[자책하지마 11화] 무인 발권기 앞에서 — 기차표 한 장의 용기

명절이 다가오면, 나는 기차표보다 발권기가 더 무섭다.

역에 일찍 나갔다. 창구는 줄이 길고, 무인 발권기는 비어 있다. 비어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나 같은 사람한텐. 출발역, 도착역, 날짜, 좌석… 화면이 묻는 게 많아 손이 자꾸 멈춘다. 뒤에 젊은 사람이 서면, 괜히 표를 못 끊고 비켜준 적도 있다.

역 한구석에서 발권기를 한참 들여다보던 노인을 본 적 있다면, 그게 누군가의 부모였다.

이번엔 미리 화면한테 물었다. “기차 무인 발권기에서 표 끊는 순서 알려줘. 나 처음이라 하나도 몰라.” 출발·도착역 고르기, 날짜와 시간, 좌석 선택, 결제 — 머릿속에 길이 먼저 깔렸다.

다음 날, 그 발권기 앞. 줄이 뒤에 생겨도 마음이 급하지 않았다. 표 한 장이 또르르 나왔다. 명절에 손주 보러 가는 표, 내 손으로 끊은 첫 표였다.

기차표보다 발권기가 무서웠던 나 — 이제는, 그 앞에서 숨을 한 번 고르고 천천히 누른다.

오늘의 한 줄 — 무인 발권기도 “표 끊는 순서 알려줘” 한마디면 길이 생겨요.

다음 화: 영상통화로 손주 얼굴 보기 — “할머니, 나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