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형광등을 드디어 갈았다. 새 등을 끼우고 스위치를 올리자, 방이 환해졌다. 어둠에 익숙했던 눈이 잠깐 시렸다. 나는 그 환한 방 한가운데 서서, 오래 울었다.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오랜만에 밝아서.
언젠가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버리는 가장 천한 것들 — 하수구로 흘려보낸 그 더러운 것들이, 도시의 가장 깊은 곳을 지나며 분해되고 정화되어, 끝내 발전소에서 타올라 전기가 된다고. 그래서 밤마다 방을 밝히는 그 불빛 안에는, 우리가 아무 가치 없다며 흘려보낸 것의 환생이 섞여 있다고.
그 이야기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 같았으니까. 세상이 “역량에도 불구하고”라며 돌려보낸 나, 스스로도 쓸모없다며 어둠 속에 흘려보낸 나. 가장 낮은 곳까지 떨어졌던 나. 그런데 그 낮은 곳에도, 나를 분해하지 않고 받아준 손들이 있었다. 무료로 상담해 준 사람들, 무덤덤하게 서류를 챙겨준 창구의 직원, 둥글게 앉아 박수쳐 준 사람들. 그 손들을 지나며, 나는 조금씩 다른 것이 되어갔다.
아직 빚이 다 사라진 건 아니다. 신용은 천천히 회복되는 중이고, 통장은 여전히 빠듯하다. 그래도 나는 이제 명세서를 연다. 모르는 번호도 받는다. 무엇보다, 밤이면 화면이 아니라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다.
혹시 지금 어딘가 어두운 방에 누워, 자신을 흘려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마음으로 이 글에 닿았다면. 부디 한 번만 손가락을 움직여 주세요. 무료로 받아주는 손들이 정말 있어요. 빚은 신용회복위원회 1600-5500과 서민금융 1397, 불법 추심은 1332, 법률 도움은 132. 멈추기 힘든 후원·도박·스마트폰은 1336과 1599-0075. 마음이 무너질 땐 1577-0199와 109가 24시간 곁에 있어요.
세상에 무익한 존재는 없어요. 가장 낮은 곳까지 떨어졌던 사람만이, 가장 따뜻한 빛이 될 자격을 얻는 거예요. 나는 그걸, 새로 갈아 끼운 형광등 아래에서 처음으로 믿게 됐어요.
(※ 제도·연락처는 시점에 따라 바뀔 수 있어요. 꼭 공식 기관으로 확인하세요. 이 이야기가 작은 빛이 되었기를.)
오늘의 한 줄. 흘려보냈다고 끝이 아니에요. 가장 낮은 곳을 지나온 당신이, 누군가의 밤을 밝힐 빛이 될 거예요. 다시, 살아봐요.
— 「다시 살아보겠어」 끝. 그동안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