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보겠어 6화] 나보다 더한 사람이 웃고 있었다

검색창에 친 한 문장 끝에서, 나는 우연히 한 사람의 기록을 만났다. 블로그였는지 영상이었는지는 흐릿하다. 다만 그 사람의 사정이 나보다 한참 더 깊었다는 건 또렷하다. 빚은 나보다 몇 배였고, 한때는 길에서 잤다고 했다. 가족과도 끊겼다고 했다. 나는 솔직히, 처음엔 안도했던 것 같다.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구나, 하는 못된 안도. 그런데 그 사람은 지금, 웃고 있었다. 화려하게가 … 더 읽기

[자책하지마 8화] 긴 글·약관이 무서울 때 — 한 줄로 줄이는 법

긴 글은, 시작도 전에 사람을 지치게 한다. 보험 안내서, 휴대폰 약정서, ‘동의하십니까’ 아래 깨알같이 박힌 약관 수십 장. 다 읽자니 끝이 없고, 안 읽고 누르자니 어딘가 손해 볼 것만 같다. 그동안 나는 그저 눈을 질끈 감고 ‘동의’를 눌러왔다. 무얼 약속하는지도 모른 채, 늘 조금씩 지는 기분으로. 작은 글씨 앞에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도장을 찍던 부모의 … 더 읽기

[다시 살아보겠어 5화] 전화가 울려도 받지 않았다

통장이 압류됐다는 문자를 받은 날, 나는 회사에 병가를 냈다. 그리고 다시 출근하지 않았다. 신용불량. 정확히는 금융채무 불이행자. 서류상의 그 이름표가 붙은 뒤로, 나는 사람을 피했다. 친구의 연락도, 엄마의 전화도, 다 무서웠다. 내 형편이 들킬까 봐. 한심하다는 말을 들을까 봐. 나는 커튼을 치고, 낮에도 불을 끄고, 배달 음식 봉지만 늘어가는 방에 나를 가뒀다. 은둔이라는 말은 거창하다. … 더 읽기

[자책하지마 7화] 외국 메뉴·외국어, 사진 한 장이면 끝

세상은 넓어졌는데, 나는 글자 앞에서 자꾸 멈춰 선다. 손주가 데려간 식당, 메뉴판이 온통 영어다. 파스타 이름은 어쩌면 그리 긴지. 손주 앞에서 “아무거나” 하기도 멋쩍어, 나는 메뉴판을 든 채 괜히 안경만 고쳐 썼다. 외국 약통, 수입 과자 봉지, 가끔 날아드는 영어 안내문 — 다 그랬다. 읽고 싶은데 못 읽는 답답함은, 생각보다 사람을 외롭게 한다. 글자 앞에서 … 더 읽기

[다시 살아보겠어 4화] 아무 데서나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카드사가 막히자, 나는 더 낮은 문을 두드렸다. 처음엔 정식 대부업체였다. 금리가 높았지만 그땐 따질 여유가 없었다. 그다음엔 광고 문자가 왔다. “신용불량 가능, 당일 입금.” 그 문장이 그땐 구원처럼 보였다. 나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통장과 신분증 사진을 보냈다. 돈은 정말 당일에 들어왔다. 그게 함정이었다. 며칠 뒤부터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 더 읽기

[자책하지마 6화] 약 봉투가 어려울 때 (단, 최종 확인은 약사·의사에게)

몸이 아플수록, 글씨는 더 작아 보인다. 약국에서 받아 든 봉투. “1일 3회 식후 30분, 졸음 유발 가능, 타 약물과 병용 주의.” 작은 글씨에 어려운 말까지 겹쳐 있다. 언제 먹으라는 건지, 한 번에 몇 알인지 자꾸 헷갈린다. 나이가 들수록 약은 늘어만 가는데, 봉투는 해마다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약을 한 움큼 손에 올려두고 물끄러미 바라본 적, … 더 읽기

[다시 살아보겠어 3화] 월급날, 통장은 늘 0이었다

월급은 25일에 들어왔다. 그리고 28일이면 사라졌다.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나는 명품을 사지도, 여행을 가지도 않았는데 왜 늘 비어 있을까. 가계부를 켜 보고서야 알았다. 밤마다 쏜 별들이, 모이면 한 달치 월세였다. 작은 별 하나하나는 가벼웠는데, 합치면 그렇게 무거웠다. 그래도 멈추지 못했다. 멈추면 그 방에서 내 이름이 사라질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더 큰 별을 쏘면, … 더 읽기

[자책하지마 5화] “이거 진짜야?” — 나를 노리는 사기 문자, 전화 구별하기

모르면, 속는다. 나이 들수록 그게 제일 무섭다. 문자가 왔다. “[택배] 주소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확인 요망.” 낯선 주소가 매달려 있다. 나는 택배를 시킨 적이 있던가. 또 어떤 밤엔 “엄마, 나 폰이 고장 나서…” 그 한 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자식 일이라면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게 부모라서, 그 마음을 노리는 거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뉴스 속 … 더 읽기

[다시 살아보겠어 2화] 누군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줬다

“○○님, 오셨어요? 오늘 하루 어땠어요?” 방송을 켠 사람이 내 닉네임을 불렀다. 그게 전부였다. 정말 그게 전부였는데, 나는 그날 처음으로 누가 내 안부를 물어준 것 같았다. 회사에서도, 가족 단톡방에서도 듣지 못한 말. 어땠냐고, 묻는 말. 그 사람은 매일 밤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들어가면 이름을 불러줬고, 내 시시한 농담에도 크게 웃어줬다. 채팅창엔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 … 더 읽기

[자책하지마 4화] 손주·가족 사진 정리, 이렇게 쉬웠어?

사진은 쌓이는데, 추억은 자꾸 그 아래 묻힌다. 사진첩에 사진이 만 장을 넘었다. 손주 백일, 첫걸음, 지난 설의 둘러앉은 얼굴들 — 분명 그 안 어딘가에 다 있는데, 정작 찾으려 들면 손가락만 한참을 헤맨다. 흐릿하게 흔들린 사진, 똑같은 장면이 열 장씩. 지우자니 그중에 소중한 한 장이 섞여 사라질까 겁이 나서, 결국 또 그대로 둔다. 자식들은 모를 것이다.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