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하지마 6화] 약 봉투가 어려울 때 (단, 최종 확인은 약사·의사에게)

몸이 아플수록, 글씨는 더 작아 보인다. 약국에서 받아 든 봉투. “1일 3회 식후 30분, 졸음 유발 가능, 타 약물과 병용 주의.” 작은 글씨에 어려운 말까지 겹쳐 있다. 언제 먹으라는 건지, 한 번에 몇 알인지 자꾸 헷갈린다. 나이가 들수록 약은 늘어만 가는데, 봉투는 해마다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약을 한 움큼 손에 올려두고 물끄러미 바라본 적, … 더 읽기

[다시 살아보겠어 3화] 월급날, 통장은 늘 0이었다

월급은 25일에 들어왔다. 그리고 28일이면 사라졌다.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나는 명품을 사지도, 여행을 가지도 않았는데 왜 늘 비어 있을까. 가계부를 켜 보고서야 알았다. 밤마다 쏜 별들이, 모이면 한 달치 월세였다. 작은 별 하나하나는 가벼웠는데, 합치면 그렇게 무거웠다. 그래도 멈추지 못했다. 멈추면 그 방에서 내 이름이 사라질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더 큰 별을 쏘면, … 더 읽기

[자책하지마 5화] “이거 진짜야?” — 나를 노리는 사기 문자, 전화 구별하기

모르면, 속는다. 나이 들수록 그게 제일 무섭다. 문자가 왔다. “[택배] 주소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확인 요망.” 낯선 주소가 매달려 있다. 나는 택배를 시킨 적이 있던가. 또 어떤 밤엔 “엄마, 나 폰이 고장 나서…” 그 한 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자식 일이라면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게 부모라서, 그 마음을 노리는 거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뉴스 속 … 더 읽기

[다시 살아보겠어 2화] 누군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줬다

“○○님, 오셨어요? 오늘 하루 어땠어요?” 방송을 켠 사람이 내 닉네임을 불렀다. 그게 전부였다. 정말 그게 전부였는데, 나는 그날 처음으로 누가 내 안부를 물어준 것 같았다. 회사에서도, 가족 단톡방에서도 듣지 못한 말. 어땠냐고, 묻는 말. 그 사람은 매일 밤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들어가면 이름을 불러줬고, 내 시시한 농담에도 크게 웃어줬다. 채팅창엔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 … 더 읽기

[자책하지마 4화] 손주·가족 사진 정리, 이렇게 쉬웠어?

사진은 쌓이는데, 추억은 자꾸 그 아래 묻힌다. 사진첩에 사진이 만 장을 넘었다. 손주 백일, 첫걸음, 지난 설의 둘러앉은 얼굴들 — 분명 그 안 어딘가에 다 있는데, 정작 찾으려 들면 손가락만 한참을 헤맨다. 흐릿하게 흔들린 사진, 똑같은 장면이 열 장씩. 지우자니 그중에 소중한 한 장이 섞여 사라질까 겁이 나서, 결국 또 그대로 둔다. 자식들은 모를 것이다. … 더 읽기

[다시 살아보겠어 1화] 스크롤 끝에 내가 있었다

엄지손가락만 살아 있었다. 나머지 나는 다 꺼져 있는데, 그 작은 손가락 하나만 부지런히 화면을 밀어 올렸다. 십오 초짜리 영상들이 끝없이 떨어졌다. 누가 춤을 추고, 누가 울고, 누가 돈을 자랑하고. 웃기지도 않은데 입꼬리가 자동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서른두 살. 자취방 천장의 형광등은 한쪽이 나가서, 켜면 절반만 밝았다. 나는 그 어스름한 빛 아래 누워 밤을 흘려보냈다. 회사에서는 … 더 읽기

[자책하지마 3화] 병원·관공서 안내문, 무슨 말인지 모를 때 — 사진 한 장이면 됩니다

작은 글씨 앞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는다. 병원에서 받아 든 종이 한 장. “수납 후 3번 창구에서 처방전 수령, 익일 재방문 시 보험 적용.” 분명 우리말인데, 우리말 같지가 않다. 돋보기를 고쳐 써도 단어 사이가 자꾸 미끄러진다. 젊은 직원에게 다시 묻자니 뒤에 선 사람들의 시선이 등에 닿는 것 같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구비서류’, ‘기한 내 미제출 … 더 읽기

[자책하지마 2화] 키오스크가 무섭다면, 가기 전에 ‘예습’하고 가세요

겁이 나는 건, 못나서가 아니라 처음이라서다. 지난번 카페에서 키오스크와 한판 붙은 뒤로, 나는 작은 결심을 했다. 다음엔 당황하지 말자고. 그런데 막상 새 가게에 가면 화면 생김새가 다 다르다. 햄버거집, 분식집,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버튼 위치도 글자도 제각각이다. “아니, 왜 다들 다르게 만들어 놓은 거야.” 결국 또 식은땀. 예순다섯. 이제 와 새삼 깨닫는다. 나는 ‘몰라서’ 무서운 … 더 읽기

[자책하지마 1화] “이 나이에 무슨”… 그 말, 오늘부로 그만두기로 했다

키오스크 앞에서 나는, 또 작아졌다. 아메리카노 한 잔. 그게 뭐라고. 화면은 자꾸 “다음”을 누르라는데, 손가락은 허공에서 길을 잃는다. 뒤에 선 줄이 세 명, 네 명. 결국 알바생이 다가와 “제가 도와드릴게요” 한다. 그 친절이 오늘따라 더 부끄러워서, 나는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컵을 받아 도망치듯 나왔다. 올해 예순둘. 평생을 바쁘게만 살았다. 새벽같이 나가 일하고, 아이들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