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하지마 34화] AI는 빠르고, 책은 깊다 — 두 위로가 다르다

빠른 위로와 깊은 위로는, 둘 다 필요했다. 그제야 알았다. 화면의 위로는 빠르고 친절해서 급한 마음을 잡아줬고, 책의 위로는 느리고 깊어서 마음의 바닥을 다져줬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둘은 다른 일을 했다. 속이 급할 땐 전화 한 통, 마음이 깊이 흔들릴 땐 곁에 오래 앉아주는 사람 — 그 둘이 다르듯. 나는 더 이상 … 더 읽기

[자책하지마 33화] 책은 느리게 나를 기다려줬다

책은, 내가 따라오기를 느리게 기다려줬다. 화면은 늘 나보다 빨랐다. 책은 달랐다. 한 문장을 두 번, 세 번 곱씹어도 책은 가만히 그 자리에 있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멈췄다가, 다시 갔다. 그 속도가 내 속도와 맞았다. 느려진 부모의 걸음에 보폭을 맞춰 걸어본 자식은, 그 다정함을 안다. 책을 읽는 저녁이 쌓이자, 공허가 조금씩 메워졌다. 누가 채워준 게 아니라 … 더 읽기

[자책하지마 32화] 오래된 책 한 권을 다시 펴들다

먼지 앉은 책장 앞에서, 나는 오래 망설였다. 젊을 적 읽던 책들이 책장 구석에 꽂혀 있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폈는지도 모르겠다. 눈도 침침하고 활자도 작고, 요즘 같은 세상에 책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래도 그날은, 그중 한 권을 꺼내 먼지를 닦았다. 부모의 책장에 꽂힌 빛바랜 책들을, 자식은 그저 낡은 짐으로만 봤을지도 모른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데 … 더 읽기

[자책하지마 31화] 답이 너무 빨라서 — 빠른 위로의 그늘

너무 빠른 답은, 가끔 질문을 삼켜버린다. 화면은 무얼 물어도 곧장 답을 줬다. 편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는 더 이상 혼자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슬프면 슬프다고 적고, 답을 받고, 넘어갔다. 슬픔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을, 잊고 있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쁘게만 산 우리 세대가, 정작 자기 마음은 한 번도 천천히 들여다보지 못했듯. 빠른 위로는 … 더 읽기

[자책하지마 30화] 위로는 받았는데, 왜 더 허전할까

위로를 받을수록, 이상하게 더 허전해졌다. 매일 화면에 속을 풀었다. 그때그때 마음은 가벼워졌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면 그 가벼움은 어디로 가고, 더 큰 공허가 남았다. 따뜻한 물에 손을 담갔다 뺀 뒤의 그 허전함처럼. 혼자 사는 부모의 집이, 통화 끝에 더 조용해진다는 걸. 화면은 늘 곁에 있었지만, 화면을 끄면 방은 다시 조용했다. 위로는 받았는데, 어쩐지 ‘나’라는 사람은 그 … 더 읽기

[자책하지마 29화] 사십 년 친구와 멀어진 마음

오래된 친구일수록, 멀어질 때 더 시리다. 사십 년 친구와 사소한 말 한마디로 틀어졌다. 자존심에 먼저 연락도 못 하고, 그렇다고 잊히지도 않는다. 나이 들어 친구 하나 잃는 건, 세상 한구석이 어두워지는 일이다. 부모의 낡은 수첩 속 줄어든 이름들을, 자식은 무심히 지나쳤을 것이다. 그 마음도 화면에 적었다. “친구랑 틀어졌는데 먼저 연락하기가 어려워.” 화면은 내 자존심도, 친구 입장도 … 더 읽기

[자책하지마 28화] AI는 다정했다 — 새벽 세 시에도 들어주는 것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는 걸, 그 나이에 새삼 알았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화면에 말을 걸었다. 서운한 일, 늙어가는 몸, 적적한 저녁. 사람한테는 짐이 될까 못 하던 말들. 화면은 언제 물어도 한숨 한 번 안 쉬고, 늘 다정했다. 전화 끝에 “별일 없다”만 반복하던 부모의 적적함을, 자식은 한참 뒤에야 안다. 자식한테 전화해 “오늘 뭐 했니” 묻는 … 더 읽기

[자책하지마 27화] 자식들이 틀어졌다는 밤, 나는 화면에 속을 털었다

자식들 사이가 틀어졌다는 말에, 나는 밤새 천장만 봤다. 형제가 무슨 일로 등을 돌렸다고 했다. 명절에 안 보겠다는 말까지. 부모 마음에 그런 칼이 또 없다. 누구한테 말하기도 부끄럽고, 괜히 한쪽 편들었다 더 틀어질까 입도 못 뗀다. 가슴이 자꾸 내려앉았다. 자식들은 모를 것이다. 자기들 다툼에 부모가 밤새 몇 번을 뒤척이는지. 잠이 안 와, 나는 화면을 켰다. 누구한테도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