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하지마 33화] 책은 느리게 나를 기다려줬다

책은, 내가 따라오기를 느리게 기다려줬다.

화면은 늘 나보다 빨랐다. 책은 달랐다. 한 문장을 두 번, 세 번 곱씹어도 책은 가만히 그 자리에 있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멈췄다가, 다시 갔다. 그 속도가 내 속도와 맞았다.

느려진 부모의 걸음에 보폭을 맞춰 걸어본 자식은, 그 다정함을 안다.

책을 읽는 저녁이 쌓이자, 공허가 조금씩 메워졌다. 누가 채워준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채운 거였다. 받는 위로와 길어 올리는 위로는 달랐다.

물론 어려운 대목도 많았다. 그럴 땐 그 부분만 화면에 물었다. 책이 멈춰 세운 자리에서, 화면이 한 걸음 거들었다.

책은 나를 느리게 기다려줬다 — 그 기다림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채우기 시작했다.

오늘의 한 줄 — 책은 답을 주는 대신 당신을 기다려줍니다. 그 속도를 한번 누려보세요.

다음 화: AI는 빠르고, 책은 깊다 — 두 위로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