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글씨 앞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는다.
병원에서 받아 든 종이 한 장. “수납 후 3번 창구에서 처방전 수령, 익일 재방문 시 보험 적용.” 분명 우리말인데, 우리말 같지가 않다. 돋보기를 고쳐 써도 단어 사이가 자꾸 미끄러진다. 젊은 직원에게 다시 묻자니 뒤에 선 사람들의 시선이 등에 닿는 것 같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구비서류’, ‘기한 내 미제출 시’ — 그 딱딱한 말들 앞에서 나는, 또 한 뼘 작아졌다.
누군가는 이 장면이 낯익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안내문을 손에 쥔 채 한참을 서 있던 제 부모의 뒷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날은 그냥, 그 종이를 휴대폰으로 찍어 화면에 보여줬다. “이게 무슨 말인지 쉽게 좀 풀어줘. 나 어려운 말은 잘 몰라.” 화면은 비웃지도, 한숨 쉬지도 않았다. 옆집 사람이 어깨너머로 일러주듯 천천히 풀어줬다. “수납 먼저 하시고, 3번 창구에서 처방전 받으세요. 내일 다시 오면 보험이 돼요.” 아, 고작 그 말이었구나.
한 발 더 디뎌봤다. “그럼 난 지금 뭐부터 하면 돼?” 순서가 하나, 둘, 셋으로 손에 잡혔다. 나는 그 순서를 따라, 처음으로 안내문 앞에서 헤매지 않았다.
작은 글씨 앞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는다 — 그러나 이제는, 길을 물어볼 데가 생겼다. 늦은 게 아니라, 여태 물어볼 곳을 몰랐을 뿐이다.
오늘의 한 줄 — 어려운 안내문은 사진으로 찍어 “쉽게 풀어줘”라고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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