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앞에서 나는, 또 작아졌다.
아메리카노 한 잔. 그게 뭐라고. 화면은 자꾸 “다음”을 누르라는데, 손가락은 허공에서 길을 잃는다. 뒤에 선 줄이 세 명, 네 명. 결국 알바생이 다가와 “제가 도와드릴게요” 한다. 그 친절이 오늘따라 더 부끄러워서, 나는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컵을 받아 도망치듯 나왔다.
올해 예순둘. 평생을 바쁘게만 살았다. 새벽같이 나가 일하고, 아이들 키우고, 부모 모시고… 정신 차려 보니 세상은 손바닥만 한 기계 안으로 죄다 들어가 버렸다. 나만 빼고. 자식들이 사준 스마트폰은 전화하고 손주 사진 보는 것 말곤 거의 장식이다. “엄마는 그냥 폰으로 하면 되잖아.” 그 ‘그냥’이, 나한테는 매번 절벽이다. 은행도, 병원 예약도, 기차표도 — 다들 ‘그냥’ 폰으로 한다는데.
그날 밤에도 중얼거렸다. “이 나이에 무슨…” 입에 붙은 말이었다. 그런데 문득 TV에서 누가 그러더라. 이제 백 세 시대라고. 가만 따져보니 나, 앞으로 사십 년이 더 남았다. 그 사십 년을 ‘이 나이에 무슨’으로 다 보낼 셈인가 싶으니, 좀 억울했다.
주말에 놀러 온 손주가 내 폰에 뭘 하나 깔아주고 갔다. “할머니, 모르는 거 여기다 물어봐. 얘는 안 비웃어.” 반신반의했다. 사람한테도 부끄러워 못 묻던 걸, 나는 처음으로 화면에 대고 물었다. 손이 좀 떨렸다.
“키오스크에서 아메리카노 시키는 법 좀 알려줘. 나, 진짜 하나도 몰라.”
화면은 나를 비웃지 않았다. 한숨도 쉬지 않았다. 줄을 세우지도 않았다. 똑같은 걸 세 번 물어도 세 번 다 똑같이 차근차근, 누르는 순서대로, 큰 글씨로, 천천히. 나는 그 밤에 아무도 모르게 식탁에 앉아 연습을 했다. 첫 화면, 메뉴 고르기, 잔 크기, 포장이냐 매장이냐, 결제. 몇 번이고.
다음 날. 같은 카페. 같은 키오스크. 뒤에 또 줄 세 명.
그런데 이번엔, 어제 배운 대로 손가락이 움직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포장. 결제. “삑.” 영수증이 또르르 나왔다.
별것 아닌 그 작은 종이를, 나는 한참 들여다봤다. 뒤에 선 사람한테 처음으로 안 미안했다. 작아졌던 내가, 아주 조금 펴진 기분이었다. 삼심오십 년.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키오스크 앞에서 나는, 또 작아졌다 — 아니.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의 한 줄 — 모르는 건 죄가 아니에요. 안 물어본 게 아쉬울 뿐이죠.
다음 화: “키오스크, 가기 전에 미리 연습하고 가는 법” (진짜 하나도 몰라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