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함은, 가까운 사이에서 더 크게 터진다.
모임의 김 영감님. 일흔이 넘었고 고집도 세다. 같은 화면을 열 번을 설명해도 다음 주면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니, 지난번에 했잖아요!” 나도 모르게 말끝이 날카로워졌다. 김 영감님 얼굴이 굳었다.
자식에게 같은 걸 물었다가 핀잔 들어본 부모라면, 그 굳은 얼굴을 안다.
집에 와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나는 자식들이 “엄마, 또 까먹었어?” 할 때 얼마나 작아졌던가. 그 말이 그렇게 서러웠으면서, 나는 똑같은 말을 김 영감님께 하고 있었다.
화면한테 괜히 물어봤다. “어른한테 뭔가 가르칠 때, 짜증 안 내고 하는 법 있어?” 답은 단순했다. 천천히, 같은 걸 몇 번이든, 그리고 ‘잘하고 계세요’ 한마디. 내가 화면한테 받았던 그 친절을, 나는 잊고 있었다.
답답함은 가까운 사이에서 더 크게 터진다 — 그러니 더, 한 박자 천천히 가야 한다.
오늘의 한 줄 — 누군가를 가르칠 땐, AI가 내게 해주던 그 인내를 떠올려보세요.
다음 화: 화면 앞에서 작아지는 그를 보며, 옛날의 나를 봤다